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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조선 후기의 정치 (1 붕당 정치의 전개와 변질) 기본 배경 지식

몰못아새벽 2025. 1. 11. 15:05

1. 임진왜란 : 1592년 발발 

 

2. 병자호란 : 1636년 발발 

 

3. 조선 전기와 후기를 나누는 기준 : 임진왜란(1592년)

 

4. '조선'의 글자 뜻 : 아침 조, 맑은 선 - 아침의 빛처럼 새롭고 밝은 나라 

 

5.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 : 최초로 성립된 국가 = 고조선 

 

6. 사림파 : 사림파는 조선 중기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학자들로, 주로 지방에서 성장한 세력을 말합니다. 이들은 조선 전기의 훈구파에 대항하며 도덕과 의리를 강조하고, 성리학적 이상 정치를 추구했습니다. 이후 이들이 중앙 정계에 진출하며 붕당 정치를 주도하게 되었어요.

 

7. '붕당 정치'에서 '붕당'의 말 자체의 의미: '붕당(朋黨)'은 '붕(朋)'이 친구나 동료를 뜻하고, '당(黨)'은 무리나 집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붕당'은 같은 의견이나 이익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나 파벌을 말합니다. '붕당 정치'를 영어로는 'factional politics' 또는 'party politics'로 번역합니다.

 

8. 서인, 남인, 북인의 대략적인 성격: 사림파는 붕당으로 나뉘었는데, 북인, 서인, 남인은 각기 다른 정치적 입장과 지역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인: 서인은 사림파의 주류 중 하나로, 주로 기성세력과 연결되어 있었고, 현실적이고 온건한 노선을 추구했습니다. 남인: 남인은 서인과 갈라져 나온 세력으로, 상대적으로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입장을 가졌습니다. 북인: 북인은 남인에서 갈라져 나온 또 다른 분파로, 임진왜란 이후 더욱 급진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들은 각자 다른 정치적 견해와 정책 방향을 가지고 있었죠.

 

9. 동인은 있는가? 사실 동인도 있었습니다. 동인은 서인과 함께 처음 붕당 정치가 시작될 때 형성된 두 주요 파벌 중 하나였어요. 동인은 이후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게 되었고, 서인은 그대로 남아 서인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동인은 초기에는 비교적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가졌던 파벌이었죠.

 

10. 북인을 주도했던 인물: 북인은 임진왜란 이후 정권을 잡았던 파벌로,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여립, 이이첨, 그리고 광해군 시기에는 대북파의 이산해, 정인홍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급진적이고 강경한 정책을 추진했죠. 북인은 정치적으로 급진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취했던 파벌이었습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에 이러한 성향이 더 두드러졌죠. 그래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유유상종으로 모여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곤 했습니다. 북인은 16세기 후반, 선조 대에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분열되면서 형성되었습니다. 특히 정여립의 모반 사건과 정철의 건저의 사건 이후, 동인 내에서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뉘었는데, 이 중 강경파가 북인이 되었습니다.

 

11. 반정의 뜻: '반정(反正)'은 기존의 잘못된 정권이나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의미로, 보통 쿠데타나 정변을 가리킵니다. '인조반정'은 1623년, 광해군의 폭정에 반발한 서인과 남인이 연합하여 일으킨 정변을 말합니다. 이 정변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어요.

 

12. 광해군의 폭정: 광해군의 폭정은 여러 가지 정치적 실책과 강압적인 정책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왕권 강화를 위해 반대파를 숙청하고, 백성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거나, 강압적인 통치를 펼쳤다는 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들로 인해 민심이 이반되었고, 결국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습니다.

 

13. 광해 이름 뜻: '광해(光海)'라는 한자는 '빛 광(光)'과 '바다 해(海)'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광'은 밝음을, '해'는 넓고 깊음을 상징하죠. 그래서 '광해'는 '밝고 넓은 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4. 북벌: '북벌'은 조선 후기 효종 때 추진된 정책으로, 병자호란으로 잃은 국토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청나라를 정벌하려는 계획을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효종이 추진했던 북벌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효종은 북벌 의지를 강하게 보였지만, 당시 조선의 국력과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실제로 북벌을 단행하지는 못했죠. 대신 국방력 강화와 군사 훈련을 통해 대비하려 했지만, 실제로 청나라와의 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15. 호란: '호란'은 외적의 침입을 의미하는데, 특히 조선 시대에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가리킵니다. 정묘호란(1627년)과 병자호란(1636년)은 청나라(후금)의 침략을 말하죠. 효종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북벌 정책을 추진했지만,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완전히 실현되지는 못했습니다. 서인과 남인 사이에는 북벌 정책의 추진 여부와 방향을 두고 대립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호(胡)'자는 오랑캐를 의미하는 말로, 주로 북방의 이민족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호란'은 이러한 북방 이민족의 침입을 뜻하는 말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각각 1627년과 1636년에 청나라(후금)의 침략을 가리킵니다.

 

16. 자의 대비: '자의 대비'는 효종의 비(妃) 효종비 조씨를 가리킵니다. '자의'는 그녀의 시호 중 하나로, 효종 사후 대비가 되었고, 현종과 숙종 때 왕실 어른으로서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의 복상 기간(상을 입는 기간)을 두고 남인과 서인 간에 예법 문제로 논쟁이 발생했죠. 효종의 비(妃)는 효종의 아내, 즉 부인을 의미합니다. 자의 대비는 효종의 아내로서, 효종이 사망한 후 대비가 되었습니다.

 

17. 대비: '대비(大妃)'는 왕이 사망한 후 그 왕의 어머니나 왕비를 지칭하는 호칭입니다. 대비는 왕실의 어른으로서 중요한 의례나 의전을 주관하기도 하며, 국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효종 사후, 그의 부인인 조씨가 대비가 되었던 것이죠.

 

18. 전례 문제: '전례(典禮)'는 오랜 시간 동안 전해 내려오는 의식이나 예법을 말합니다. 예송 논쟁에서 '전례 문제'는 상복의 기간 등 예법에 관한 전통적인 규범을 지키는 문제를 의미합니다. 남인과 서인은 자의 대비의 복상 기간을 두고 전례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갈렸던 것입니다.

 

19. 효종이 죽은 나이: 효종은 1659년 5월 4일, 41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머리에 난 작은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어의가 침을 놓았는데, 과다 출혈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당시 41세면 요즘 기준으로도 젊은 나이에 해당합니다. 효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을 거예요.

 

20. 자의 대비가 죽은 나이: 자의 대비는 1688년 9월 20일에 사망하셨습니다.

 

21. 효종과 효종의 부인이 사망 년도 차이: 효종이 1659년에 사망했고, 자의 대비는 1688년에 사망했으니, 약 29년 후에 사망한 셈입니다.

 

22. 예송 논쟁의 리던더시: '예송(禮訟)'에서 '예(禮)'는 예법, 즉 전통적인 의례나 규범을 의미하고, '송(訟)'은 논쟁이나 다툼을 뜻합니다. 따라서 '예송'은 예법과 관련된 논쟁을 말하는데, 조선 시대에는 상복을 입는 기간과 같은 예법 문제로 벌어진 논쟁을 뜻했습니다. 지적하신 대로, '예송' 논쟁이라는 표현은 다소 중복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예송' 자체가 예법과 관련된 논쟁을 의미하므로, '예송'이라고만 해도 충분히 의미가 전달됩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예송 논쟁'이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되어 온 점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23. 3년설과 왕권강화 : 남인이 주장한 3년설은 자의 대비가 효종을 장남으로 간주하여, 장남의 죽음에 대한 예법을 적용하여 3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효종을 장남처럼 대우함으로써, 왕실의 예법과 권위를 강화하려는 의도를 반영했습니다. 3년설은 효종을 장남으로 간주하여, 왕실의 예법을 중시하고 왕실의 위계질서를 강조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24. 1년설과 신권강화: 서인이 주장한 1년설은 자의 대비가 효종을 장남이 아닌 왕의 신하로서 대우하여, 기년복(1년)을 입어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이는 왕권보다는 신권을 강조하려는 입장을 반영한 것입니다. 1년설은 자의 대비를 신하의 어머니로 간주하여, 왕권보다는 신하의 권한을 중시하는 서인의 입장을 반영한 것입니다.

 

25. 광해군 - 인조(효종의 아버지) - 효종(인조의 둘째 아들. 인조의 첫째 아들은 소현세자) 

 

26. '종'과 '조'의 차이점: 종(宗): 일반적으로 왕위를 계승한 왕들에게 붙이는 묘호입니다. 조(祖): 새로운 왕조를 창업했거나, 나라에 큰 업적을 남긴 왕들에게 붙이는 묘호입니다. 그래서 '종'은 보통의 왕들에게, '조'는 특별한 공적이 있는 왕들에게 사용됩니다.

 

27. 계비: '계비'는 정식 왕비가 사망하거나 폐위된 후, 새롭게 맞이한 왕비를 의미합니다. 즉, 인조의 두 번째 왕비가 '계비'에 해당합니다.

 

28. 인조의 정실 부인: 인조의 정실 부인(인열왕후)의 둘째 아들이 효종이고, 인조의 계비(장렬왕후 강씨)는 효종의 계모가 됩니다.

 

29. 효종의 친모는 돌아가셨다. : 효종의 친어머니인 인열왕후 한씨는 효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30. 대공설: '대공설'은 상복을 입는 기간을 '대공복'에 따라 9개월로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대공복'은 상복 중 하나로, 가까운 친족(주로 손위형제나 손아래형제)에 대한 상복을 의미합니다. 서인은 효종비의 상을 '대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9개월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31. 기년설: 여기서 '1년설'과 '기년설'은 같은 의미입니다. '기년(期年)'은 한 해 동안을 의미하며, 1년 동안 상복을 입는다는 뜻입니다. 남인이 주장한 '1년설'은 효종비의 상을 1년 동안 입어야 한다는 것이고, '기년설'도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32. 상복을 몇년 입는게 그렇게 중요한가?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상복 기간에 대한 논쟁이 다소 비효율적이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는 이러한 예법이 사회 질서와 왕실 권위, 정치적 정당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당시 예법은 단순한 규범 이상으로, 사회적·정치적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었고, 왕실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상복 기간과 같은 예법 문제는 단순한 예절을 넘어 정치적 입장과 권력 관계를 나타내는 중요한 논쟁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33. 환국 : '환국'은 조선 시대에 붕당 정치로 인해 정권이 급격히 교체된 사건을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factional change' 또는 'political factionalism'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34. 편당적 인사조치: '편당적 인사 조치'는 특정 붕당을 지지하고 그 붕당에 속한 인물들을 중용하는 인사 정책을 말합니다. 이로 인해 정국이 급변하고 다른 붕당이 몰락하거나 힘을 잃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죠.

 

35. 광해군 - 인조 - 효종(인조의 둘째 아들. 첫째 아들은 소현세자) - 현종(효종의 아들) - 숙종

36. 붕당정치는 패거리 정치 / 환국이 반복된 이유: 조선 후기 붕당 정치가 변질되면서 권력을 잡기 위한 당쟁이 심화되었습니다. 각 붕당은 정권을 잡기 위해 상대 당을 배제하려 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환국(정권 교체)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런 파벌 정치가 발생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권력 투쟁: 각 붕당은 정권을 잡기 위해 권력 투쟁을 벌였고, 상대 붕당을 제거하려는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왕권과 신권의 갈등: 왕권을 강화하려는 세력과 신권을 강화하려는 세력 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사회 변화: 새로운 사회 세력의 등장과 경제적 변화로 인해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면서, 각 붕당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 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파벌 간의 대립이 심화되었고, 결국 환국이 반복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37. 정호:  '정호(正祜)'는 원자, 즉 왕세자의 정식 책봉을 말합니다. 기사환국 당시,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인 원자(훗날 경종)를 정식 왕세자로 책봉하려 했지만, 서인은 이를 반대했습니다. 서인들은 장희빈과 그 아들의 왕위 계승을 반대하며 정치적 입지를 지키려 했죠.

 

38. 숙종의 정실 부인 : 인현왕후 (기사환국때 폐위되었다가 갑술환국때 복위)

39. 서인을 제거했다? : 서인을 정치적으로 배제하고 권력에서 밀어내려 했다는 의미

 

40. 송시열: 송시열은 조선 후기 성리학자로서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예송 논쟁에서 남인과의 갈등으로 두 차례 유배되었는데, 갑술환국을 통해 서인이 정권을 회복하면서 그의 지위도 복권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송시열은 다시금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송시열은 예송 논쟁과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유배되었고, 정치적 지위가 크게 실추되었습니다. 특히 기사환국 때는 서인이 몰락하면서 송시열의 입지도 약화되었죠. 그러나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서 송시열의 지위가 복권되었고, 그의 영향력이 회복된 것입니다. 송시열의 지위 복권은 정치적 의미에서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의 복권은 서인의 정치적 영향력 회복을 상징하며, 정국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의 복권은 정치적 정당성이나 정통성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41. 광해군 - 인조 - 효종(인조의 둘째 아들. 첫째 아들은 소현세자) - 현종(효종의 아들) - 숙종 - 경종(숙종의 아들)

 

42. 사화: '사화(士禍)'는 '사대부의 화'라는 뜻으로, 조선 시대에 사대부들이 정치적 이유로 화를 입은 사건을 말합니다. '신임사화'는 1721년부터 1722년 사이에 일어난 사건으로, 경종 때 노론과 소론의 갈등 속에서 소론이 노론을 대대적으로 숙청한 사건입니다.

 

43. 대리청정: '대리청정'은 왕이 건강이 좋지 않거나 정치적 이유로 직접 통치할 수 없을 때, 세자나 세제가 대신 국정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